책리뷰7 7. 저주토끼(정보라, 아작) 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라 하여 도서관에서 좀 빌려보려 했더니만 항상 대출중이었던 《저주토끼》. 그렇게 몇 번 허탕을 친 뒤 잊고 지내다가 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읽게 되었다. 동명의 단편 〈저주 토끼〉를 필두로 한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이고, 총 10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전반적으로 쓸쓸하고 메마른 분위기의 글이기도 하고, 몇몇 단편은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곱씹어 보느라 한 번에 뚝딱 읽진 못하고 여러 번 나누어 읽었다. 1. 〈저주 토끼〉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아주 강렬한 첫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주 용품인 토끼 모양의 전등은 아주 귀여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하얀 .. 2023. 4. 30. 6.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창비) 위저드 베이커리. 이름만 들어도 신기한 빵들이 즐비할 것 같은 그 곳의 주인장은 진짜 마법사다. 파는 빵들도 당연히 평범하지 않다. 각양각색의 특제 비밀 엑기스가 들어간 빵들은 제각기의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섭취 시 주의해야 한다. 제빵실의 오븐 문 너머로는(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오븐 벽에 가로막히겠지만) 펄펄 끓는 무쇠솥과 마법진, 그리고 고서가 가득한 비밀스런 공간이 존재한다. 말투부터 행동까지 다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그렇다고 매정하진 않은 마법사와, 밤이면 본래 모습인 파랑새로 돌아가는 명랑한 점원. 무정한 세상에 쫓겨 빵집으로 도망쳐 들어온 소년 앞에 펼쳐진 환상과도 같은 새로운 세상. 위저드 베이커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소설 속 '나'는 외로운 소년이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2023. 1. 15. 5. 대불호텔의 유령(강화길, 문학동네) 여름이 가까워지니 오싹한 이야기를 읽어줘야 하지 않겠나! 무슨 책을 빌리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선물 받은 책 속에 끼워져 있던 보라색 홍보지가 번뜩 생각났다. 제목은 . 장르는 고딕 호러란다. 제목도 그렇고 장르도 그렇고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책인데 무엇보다도 쨍한 보라색 표지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책 속의 화자는 작가이다. 어릴 적 겪었던 기이한 체험을 계기로 소설을 쓰려는데, 어쩐지 한 글자도 써내려갈 수가 없다. 자꾸만 들려오는 원한 가득한 환청과 머릿속에서 뒤섞이는 기억들. 어떻게든 글을 써내려가려던 작가는 친구 '진'으로부터 인천에 위치한 '대불호텔'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왠지 모를 이끌림에 직접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지금은 모든 게 사라지고 황량한 들판 뿐인 호텔의 빈터... 2022. 6. 26. 4.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을유문화사)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건축에 관한 에세이다. 건축이라는 단어가 자칫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큰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 군데군데 등장하는 건축 용어들도 설명이 잘 되어 있고 일단 글 자체가 어렵지 않다.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를 겸하고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책 역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작업하신 듯 하다. 책을 읽다보면 신선한 충격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만큼 작가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흥미롭다. 대표적인 예로 1장에서 작가는 걷고 싶은 거리를 정의내리는 데 '이벤트 밀도'라는 정량적인 기준을 사용한다. 이벤트 밀도란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수로, 수치가 높을 수록 해당 거리는 보행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 2021. 7. 10.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