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다녀왔다!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Bucheon International Fantastic Film Festival 공식 홈페이지
www.bifan.kr
한두 편이라도 매년 가서 보는 영화제였는데 작년, 재작년은 코로나로 방문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올해는 작정하고 시간표를 짰다. 처음의 패기에 비해 많은 편수는 보지 못했다만.. 오랜만에 혼자, 또 같이 쏘다니며 영화제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시간이 흘러 벌써 8월 중순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흥겨웠던 7월의 추억을 되짚어본다.
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름이 참 길다. 말 그대로 세계 각지의 판타스틱한 장르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는 영화제다. SF, 호러, 스릴러, 판타지 등등 독특하고 가끔은 이게 뭔가 싶지만 전반적으로 재기 발랄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무래도 분야가 특화되어 있다 보니 마니아층이 많이 찾는 영화제인 것 같다. 다만, 그만큼 본인에게는 지뢰 같은 영화를 보게 될 가능성도 높다! 시놉시스나 장르 표기 등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는 영화 정보를 잘 살펴보시고 고르시길 추천(아무 정보도 없이 18세 딱지 붙은 영화 보다가 속 안 좋아져서 나온 적 있음ㅠㅠ).
2. 상영관
올해 상영관은 'CGV소풍', '부천시청', '한국만화박물관', '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 크게 4곳으로 운영되었다. 메인은 영화제 사무국이 있는 부천시청과 CGV 쪽.
CGV소풍은 7호선 상동역에서 내려 넉넉 잡아 도보로 15분 정도 생각하면 된다. 주말에는 쇼핑몰 이용객들로 엘리베이터가 붐비기 때문에 여유롭게 가는 것을 추천한다. 상영관 수는 많지만 다들 크지 않고 좌석 수도 고만고만하다. 한국만화박물관은 7호선 삼산체육관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인다. 1층에 영화관이 있는데 사실 나도 안 간 지 한참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함. 부천시청에는 '어울마당'과 2016년도에 리모델링된 '판타스틱큐브'가 있다. 어울마당은 본래 영화관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라서 좌석 모양새도 영화관의 그것과 다르고 공간에 비해 스크린이 매우 작다. 판타스틱 큐브는 70석 규모의 아주 아담한 영화관이다. 두 상영관은 모두 앞 쪽에서 보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대망의 메가박스. 올해 처음 포함된 상영관인데 부천시청에서의 거리가 상당한 편이라 나부터가 고민하다가 영화 하나 예매 취소하고 안 갔다. 그나마 첫 주말 이틀 동안만 상영한 게 다행. 물론 영화제 내부의 사정이 있었겠으나 정말 띠용스러운 상영관 선택이었다.
영화제가 아무래도 더운 시기에 열리다 보니 웬만하면 동선을 최소화해서 다니는 게 좋다. 작년까지는 영화제 측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했는데 올해부터는 사라진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여러 상영관을 옮겨 다녀야 한다면 비록 가까운 거리라고 해도 7호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걸 추천.
3. 프로그램 섹션
이번에는 대대적인 섹션 개편이 있었다. '부천 초이스'와 '코리안 판타스틱'을 제외하고는 다 처음 보는 이름이어서 놀람! 정통 호러, 하드코어, 액션 장르의 최신작들을 모아 놓은 '아드레날린 라이드', SF 및 하드보일드 스릴러 영화들이 가득한 '메탈 누아르', 감성 충만한 코미디, 판타지, 드라마들을 상영하는 '메리 고 라운드' 등, 이름만 들어도 대강의 느낌이 확 오는 섹션명들이다. 기존의 단편 섹션이었던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은 '엑스라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센스 있는 말장난이 돋보인다.
더불어 올해는 배우 특별전이 다시 돌아왔다. 주인공은 배우 '설경구'. 특별전 '설경구는 설경구다'라는 이름으로 배우가 함께하는 메가토크 행사와 함께 총 7개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 외에도 내년으로 4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를 기념하는 특별전 '계속된다: 39+1,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요즘 핫한 BL(Boy's Love) 장르의 영화들을 다룬 'Boys, Be, Love' 등이 꾸려졌다. 총 49개국 268편의 영화를 선보였으며 그중 139편은 웨이브에서 온라인으로도 상영을 진행했다.


4. 이벤트 및 행사
코로나 이후 처음 선보이는 정상적인(?) 개최였던 만큼 다양한 이벤트와 행사가 함께했던 이번 영화제였다. 그동안 이렇게 이벤트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공연, 전시, 관객 참여 부스, 플리마켓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더해져 축제가 더욱 풍성하게 느껴졌다. 비록 아직도 코로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간만에 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모여 더운 밤바람 속에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5. 관람작

총 장편 6편, 단편 8편을 관람했다. 아래는 대충 휘갈겨보는 느낀 점..

외계인 아티스트 (Alien Artist, 2021)
감독: 호야 세이요
"스파이 와타나베는 국제 범죄 조직 연합의 보스, 허무달마(Void Dharma)를 암살하기 위해 일본 해안에 위치한 K 시티로 파견되었다. 허무달마 대집회에 참석하는 보스의 암살을 감행하기로 한 와타나베는 지원군을 요청하게 되는데..."
보고 나온 나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괴랄한 영화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소개글을 따왔다. 예매를 도와준 친구가 도대체 이건 무슨 영화냐며 보고 알려달라고 했는데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저예산일 걸 감안하고 봤는데도 퀄리티가 상당히 떨어졌고 무엇보다도 공감을 1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 아무리 황당무계한 스토리라도 관객으로부터 공감을 자아내는 영화들이 참 대단하다는 거다. 영화 속 허무달마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올 때마다 자꾸만 힙합을 불러젖혀 대서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차라리 노래가 가장 들어줄만했던 것 같기도.. (7/9 관람)




전체관람가: 숏버스터 (2022)
감독: 조현철&이태안, 김곡&김선, 곽경택, 홍석재
예매를 하면서도 캐스팅이 너무 짱짱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티빙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전체관람가: 숏버스터'에서 제작한 단편 영화들이었다.
일단 <부스럭>은 음악 사용이 굉장히 좋았고 배우들 연기는 말해 뭐해. 호러 요소가 있는지 모르고 들어가서인지 갈수록 조여 오는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짧은 단편임에도 넋 놓고 봤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매우 인상 깊었음. 영화가 끝나는 게 아쉬웠을 정도. <지뢰>는 으스스한 배경에 분장 빡세게 들어간 좀비(라고 해야 하나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 군인들이 나오는데 뭐랄까 정통 호러물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1차원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였다. 다음은 조병규 주연의 <스쿨 카스트>..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학교에 계급이 나눠져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다가 영화가 끝나버린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깔리는 가벼운 나레이션이 영화가 보여주는 씁쓸한 현실과 톤이 맞지 않다고도 느꼈다.
그리고 공민정 배우 주연의 <평행관측은 6살부터>. 메시지가 확실해서 좋았고 아이디어도 너무 참신했다. 영화의 배경은 평행세계 간 교신이 가능해진 근미래 사회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평행세계에 있는 나와 대화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 '경신'은 자신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길을 택한 다른 나를 만난다. 후회하지 않을까? 저 너머의 삶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내 삶이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대화 끝에 경신은 웃음 짓는다. 틀린 선택이란 없다. 모든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선택을 내린 과거의 나를 믿고 현재에 충실하면 된다. 나 역시 다른 세상의 내가 내가 가지 않은 길을 택해 살고 있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걔를 응원하고, 걔도 나를 응원하리라 믿음으로써. (7/9 관람)



혼자가 아닌 (You won't be alone, 2022)
감독: 고란 스톨레브스키
마케도니아의 시골 마을. 마녀 마리아의 저주로 딸을 뺏길 처지에 놓인 한 엄마가 딸을 깊은 동굴에 숨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녀는 결국 딸을 찾아내고, 어느새 16살이 된 딸 네베나는 갓 태어난 동물 새끼처럼 갑자기 세상에 나오게 된다. 저주로 목소리를 잃은 네베나는 마녀와 똑같은 능력(생물체를 죽이고 사체를 몸 안에 집어 넣으면 그 생물체로 변할 수 있다)을 이용해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에서 네베나는 나름의 고민과 역경 끝에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고독한 일생을 살아온 마리아와 달리 결국엔 자신의 배로 마녀인 피붙이를 낳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간의 행보에 더해 마녀와는 다르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대화시킨 것일까? 모르겠다. 영화제 아니었으면 안 봤을 영화. (7/10 관람)

날 것이 맛있어 (Barbaque, 2021)
감독: 파브리스 에부에
코미디+고어 영화. 근데 18세인 것치고는 많이 잔인하지 않았다. 사람을 사냥해 인육을 판다는 설정 자체가 자극적이다보니 18세를 받은 듯하다. 극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남편 역할을 연기하신 분이 감독님인데 환장하겠다는 표정이 아주 일품이었다.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는, 딱 부천영화제스러운 골 때리는 코믹 영화였음. (7/10 관람)


지옥의 화원 (地獄の花園, 2021)
감독: 세키 카즈아키
오피스걸들의 호탕한 액션 코믹 영화. 만화 속 클리셰를 가져와 사용하면서 나름의 성장 서사와 우정을 보여주는 듯 하나 마지막 결말을 보고 있자면 이게 다 뭔가 싶어지는 영화였다. 아싸리 병맛으로 주인공이 전국구 최고 오피스걸이 되면서 세계 각지로 원정 맞짱을 뜨러 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별개로 주인공들이 다 정말 너무 예쁘다. 나가노 메이씨.. 그리고 히로세 아리스씨.. (7/14 관람)

메타모르포제의 툇마루 (2022)
감독: 카리야마 슌스케
본격 BL로 대동단결하는 75세 할머니 유키와 17살 고교생 우라라의 감동 우정 스토리.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았고 일본영화 특유의(?) 과장된 연출이 없어서 좋았다.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에서 오는 분위기와 주된 영화 속 장소인 유키의 툇마루가 가져다주는 잔잔한 느낌이 심미적으로 아름다웠으나, 당일 잠이 부족했던 나에겐 졸음이 찾아오기 충분했다. 컨디션이 좋았다면 안 졸고 더 재밌게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서로가 서로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관계란 언제 어떻게 보아도 매력적이다. BL 만화를 좋아하고 자신이 만화를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인의 마음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우라라는 늦은 나이에도 순수하게 BL 만화에 빠져 소녀처럼 기뻐하는 유키를 만나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감상들을 유키와 공유하고 서툰 솜씨지만 동인지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저런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해 나가자는 것. 엔딩 주제곡이 기억에 남는다. 우라라와 유키가 함께 부른 '이것만 있으면'. (7/16 관람)

체리마호: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 (2022)
감독: 카자마 히로키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실망스러웠다. 애초에 드라마였다는 점, 촬영기간이 짧았다는 점, 그리고 시즌 2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 등을 참작하더라도 말이다. 연출이나 편집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었고 한 편의 영화라기 보다는 그냥 장면들을 합해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후반부터는 별다른 음악 사용없이 장면들이 연달아 나오는데 대사 사이의 적막함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드라마에서 맺은 사랑의 결실 이후 쿠로사와와 아카소가 맞닥뜨린 현실, 고민하는 지점들을 비춰준 건 좋았다. 마음속으로 1.5점을 줄까 2점을 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감독님, PD님의 방문에 감동해서 2점 드림.. 우리는 시즌 2로 만납시다.. (7/16 관람)

컨디션이 쇠한 관계로 급하게 글을 줄여본다.. 엄청 더울 거라는 공포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날씨는 봐줄만 했던 것 같다. 문제는 내 저질 체력이었을 뿐.. 내년에는 심야상영도 꼭 보러 갈게 더 재밌는 영화로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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