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D: 드라마

1. 고요의 바다(The Silent Sea, 2021)

8월 2022. 1. 9. 21:13

※ 〈고요의 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요의 바다〉 포스터

 

디즈니 플러스 1년권을 끊으면서 넷플릭스는 이제 그만 봐야지 했었는데 〈고요의 바다〉가 곧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달 값을 더 지불할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싶었지만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장르의 드라마라 그래 까짓거 12,000원 내고 기다리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땡 치자마자 달리려고 했는데 어찌저찌 하다보니 오늘에서야 시청을 끝마쳤다. 결과적으로 12,000원이 아깝진 않은 드라마였다. 왜냐하면 난 원래 SF 장르에 죽고 못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지만 역시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혹평들처럼 여러 단점을 지닌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 중 가장 큰 단점은 늘어지는 전개. 낯선 소재와 장르가 주는 신선함을 거의 죽여 놓는 수준이었다. 우주복을 입은 배우들이 달의 표면을 걸어 발해 기지에 도착할 때만해도 앞으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기지 안에 들어선 이후로는 느린 전개에 답답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게다가 도망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보란듯이 뒤를 돌아보며 다급한 표정을 짓는 연출이라든지,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대사들은 답답함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인물이 별로 없다. 하나의 팀이 이루어졌을 때 으레 있어줘야 하는 인물들(악역, 조력자, 하다 못해 개그 담당 캐까지) 구색은 그런대로 갖추어졌지만 그뿐이다. 드라마 내내 반 이상이 죽어나가는데 처음 한두 번 정도 놀랐지 나중에는 별 감흥도 없었다. 주변 인물들만이 아니다. 주인공도 그닥 매력이 없는 것이 배두나가 연기한 송지안은 언니와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인 동요나 루나에게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 등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었지만 공유가 연기한 한윤재는 심하게 말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요하는 역할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뭐 로봇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감정 없는 대사들이 단연 압권.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딸의 이야기도 나는 너무 성의 없게 느껴졌다. 뻔한 서사는 이야기를 더 지루하게 만들 뿐이다.

 

〈고요의 바다〉 포스터

 

SF 장르니만큼 과학적 오류들도 많이 지적당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콘텐츠 자체를 즐기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과적 지식이 없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다가 맞겠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몇 개 있었을 뿐이다(예를 들어 5년 동안 버려져 있던 기지에 어떤 외계 바이러스가 있을 줄 알고 헬멧을 벗는 것이며, 루나의 마지막 달 활보 장면은 거의 신인류의 등장이 아닌지..). 반면 달과 발해 기지를 그려낸 CG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 자리한 발해 기지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유기체와 만나면 증식한다는 월수의 설정과 물이 귀해진 세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물에 잠겨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도 참신했다. 물 배급권의 등급에 따라 계급이 매겨진 사회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도 좋을 것 같다.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원경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RX 용병과 관련된 어설픈 반전에 집중하기 보다는 지안과 원경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싶다.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좋은 점이 확실했던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