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B: 책

6.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창비)

8월 2023. 1. 15. 21:45

위저드 베이커리. 이름만 들어도 신기한 빵들이 즐비할 것 같은 그 곳의 주인장은 진짜 마법사다. 파는 빵들도 당연히 평범하지 않다. 각양각색의 특제 비밀 엑기스가 들어간 빵들은 제각기의 효과를 지니고 있어서 섭취 시 주의해야 한다. 제빵실의 오븐 문 너머로는(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오븐 벽에 가로막히겠지만) 펄펄 끓는 무쇠솥과 마법진, 그리고 고서가 가득한 비밀스런 공간이 존재한다. 말투부터 행동까지 다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그렇다고 매정하진 않은 마법사와, 밤이면 본래 모습인 파랑새로 돌아가는 명랑한 점원. 무정한 세상에 쫓겨 빵집으로 도망쳐 들어온 소년 앞에 펼쳐진 환상과도 같은 새로운 세상. 위저드 베이커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소설 속 '나'는 외로운 소년이다.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혼자가 되었고, 가장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집에서마저 새어머니인 배선생의 괴롭힘에 혼자가 되었다. 항상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할 뿐이다. 함께 하는 식사마저 불편해 빵으로 떼우는 저녁이 늘어만 갔다. 빵은 지긋지긋해. 그렇게 열여섯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의 단골이 되었다.

 

덕분이었을까. 의붓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치던 소년의 숨겨 달라는 외침에 마법사는 아무말 없이 오븐 문을 열어주었고, 소년은 빵집에 머무는 대신 위저드 베이커리의 홈페이지 관리 일을 맡게 된다. 지옥 같은 집만 아니라면 사실 어디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와 파랑새라니. 따뜻한 훈기가 감도는 오븐 속에서 영원히 머물고만 싶지만 '나'도 안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만은 없다는 걸. 어떻게든 부딪쳐야만 한다는 걸.

 

<위저드 베이커리>는 '나'의 성장 소설이자,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년의 인생은 한 마디로 불우하다. 내 인생은 어쩌다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나는 단지 거기 존재했을 뿐인데. 여러 번 그 생각을 곱씹던 '나'는 배선생과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아버지와 배선생의 재혼에는 애초에 사랑이나 아니면 그 엇비슷한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살림을 맡아 줄 아내가 필요했고, 배선생도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리라. 그래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을 택했다. 아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적당히 굽히고 들어갔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이 그때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라면, 그렇다면 그건 틀린 선택이었나?

 

책은 그게 바람직한 선택이었든, 틀린 선택이었든 중요한 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위저드 베이커리 홈페이지의 회원 가입 안내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분만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제품의 설명란도 마찬가지다. 사용 시 경고 사항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어떠한 선택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과거의 선택과 그 결과인 현재에 붙들려 있어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상처는 새로 돋는 살의 전제 조건이므로. 

 

소년이 겪어야만 했던 가혹한 시간들 역시 '나'를 비롯한 아버지와 배선생과 그 밖의 수많은 이들의 무수한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 역시 선택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법사와 파랑새의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알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당해야만 하는 위험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타임 리와인더를 쥐여 주고, 껍데기 뿐인 부두인형을 만들기로 마음 먹은 어느 마법사의 선택 사이로 소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없는 어떠한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다 읽고 나서야 표지 구석에 적혀 있는 '청소년문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한창 불안하고 예민할 시기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도 나름의 교훈을 얻었으니 되었다. 추운 겨울, 책을 읽는 동안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